다음은 김수남 작가의 아들이 민속박물관 "김수남을 말하다" 전시회 개막식에서 유족을 대표해 하객에게 드린 인사말입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의 아들 김상훈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저 또한 감사드립니다. 특히 좋은 전시를 준비해 주신 천진기 관장님을 비롯한 민속박물관 관계자 선생님들과 지난 10년 동안 부족한 점이 많은 저와 유족들에게 도움을 주시고 이끌어 주신 김수남기념사업회 선생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며칠전, 봄도 오고 해서 오랜 짐들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수첩을 하나 찾았어요. 2006년 2월 4일, 토요일이었습니다. 제가 신문기자를 하던 때라 그날은 일주일에 하루 맘껏 늦잠을 자도 되는 날이었죠. 그런데 아침 8시도 안 되어 전화가 울렸어요. 약간 짜증을 내며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국제전화라 장난전화 같은 느낌마저 들었죠. 태국에서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정신없는 상태에서도 메모부터 했습니다. 그 때 메모를 보니 이렇게 쓰여 있네요. “지난 밤 12시부터 의식이 없다. 아침 7시30분에 피를 토했다.” 메모는 그게 전부였지만, 저는 아직도 “당신 아버지가 지금 코마 상태라고. 당장 비행기표를 끊어서 여기로 날아와”라고 외치던 그 의사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그게 그날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오후에 출국 직전의 공항에서 임종을 전해 들었습니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신이 없던 상태로 10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그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서울과 도쿄, 제주와 군산에서 각각 네 차례의 전시회를 열었는데, 모두 개인전이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생전에 열었던 개인전을 다 합하면 그게 겨우 다섯 차례였습니다. 오늘 전시까지 합치면 돌아가신 뒤 10년 동안 열린 개인전이 작가님 생전에 열었던 개인전의 횟수와 똑같아진 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유족들에게는 하나의 중요한 매듭이 지어지는 날입니다. 이제 이 사진들이 유족들의 제한된 역량과 부족한 안목을 떠나 자유롭게 널리 퍼져갈 수 있게 됐으니까요. 지난 10년 동안 김수남 기념사업회가 하려고 했던 일, 그리고 아들로서 제가 하려고 했던 일은 단순했습니다. 이 작업의 가치가 인정받도록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작업들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이런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여러 전시회를 열었고, 책을 출간했고, 영화에 사진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네이버와 함께 한 디지털 작업이었습니다. 2012년 시작됐던 이 작업 덕분에 지금은 작가님의 사진을 전세계 누구든 쉽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무려 17만 점에 이르는 사진들이었습니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사실 선뜻 나서기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려하시는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온라인에 올라가면 사진의 가치가 떨어질지 모르고, 불법복제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말씀이고 저도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더 큰 걱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망각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진들이, 이렇게 가치있다고 생각해 온 작품들이, 그저 유족들의 손에서 잠자고 있게 된다면 누가 세상에 김수남이라는 사진가가 있었다고 기억할까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사진들이 잊혀진다면 누가 세상에 저런 문화와 저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까요? 누가 20년 전 먀오족의 삶을 돌아보고, 누가 내전으로 황폐해진 민다나오의 소수민족을 기억할 것이며, 누가 안사인 심방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만약 매그넘이라는 사진단체가 활동하지 않았다면 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이나 로버트 카파의 사진들이, 그리고 그들이 찍은 사진 속 역사와 사람들이 아직도 후세에게 전해질 수 있었을까요. 저는 이 사진들이 기억되길 바랬습니다. 사진의 가치란 것은 많이 보여질 때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0년 이상 직업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 온 사람입니다. 널리 읽히지 않는 글과 책을 찍어내는 허탈함을 잘 압니다. 사진 또한 그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한국에는 매그넘처럼 규모를 갖고 다큐멘터리 사진가를 후원하는 조직이 없습니다. 하지만 네이버 만으로는 부족한 게 있었습니다. 인터넷 회사는 사진의 가치를 인정할 수는 있지만, 그 가치를 전문가의 식견으로 세상에 알릴 수는 없습니다. 그 때 국립민속박물관이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원본 필름 전체를 기증하면 민속박물관의 자료가 되어 연구자들에 의해 해석되고, 후대에도 계속 재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저는 박물관에서 어떻게 작가님의 사진을 다루고, 오늘의 전시를 만들어 왔는지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생업에 바빠 유족들이 이 작품들에 대해 잊고 있을 때에도 박물관에서는 계속 연구하고 준비하면서 이날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아니, 저는 박물관 분들께서 이날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될 새로운 10년을 준비해 오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야말로, 저와 유족들이 관리했던 한 챕터의 마지막 페이지인 동시에 앞으로 새로 쓰여질 챕터의 첫 페이지라고 생각합니다. 김수남 작가님의 사진은 앞으로도 계속 온라인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될 것입니다. 또한 그 원본 필름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문 연구자들의 손에 관리될 것이며, 박물관이 그 설립 목적에 따라 진행하는 여러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한 다양한 형태로 소개될 것입니다. 저와 유족들은 한국에서 가장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두 조직이 제 부친이 남긴 유산을 관리하게 된 사실을 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부친도 오늘 이 모습을 다른 세계 어디선가에서 기쁘게 바라보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유족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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