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신화, 중국 리장의 나시족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다. 사람은 자연에서 지혜를 배우고, 지혜를 후손에게 전수하며, 문명을 이룬다.

언뜻 당연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현대에는 사라진 모습이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중국 운남성 서북부 산악지대의 나시족은 이런 신화에 가까운 생활을 현대까지 이어오고 있다. 옛 문자를 지키고 도제식 교육도 이어간다. 그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신화다.

나시족의 상형문자 동바문

나시족의 상형문자 동바문

나시족이 사용하는 동바문(東巴文)은 거북이의 등껍질과 사물의 형태에서 그 원리를 찾아낸 갑골문자와 상형문자다. 현대에 이르러 갑골문자와 상형문자는 박물관에서나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시족의 동바문은 표음문과 함께 이같은 갑골문자와 상형문자까지 더불어 사용하는 문자체계다. 특히 11세기 중반에 쓰여진 동바문 경서도 여전히 남아 있을 정도다.

이들의 종교 또한 독특하다. 나시족은 동바교라는 신앙체계를 갖고 있는데, 한국의 굿과 비슷한 점도 갖고 있다. 제사장 역할을 하는 ‘동바’는 동바문의 상형문자와 표음문자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 경전을 잘 읽고 쓰기 위해서다. 또한 동바문의 상형문자는 거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동바는 그림을 정확히 잘 그려내는 재주도 갖춰야만 한다. 그러므로 동바는 대부분 화가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대로 동바문을 읽히고 사용하기 때문에 지금도 동바 의례를 치를 때면 동바문을 사용한다. 근래에는 이 동바문을 연구하고 배우는 학생과 학자들도 늘고 있다.

나시족의 근거지인 리장으로 찾아가려면 서울에서 상하이, 상하이에서 운남성의 성도인 쿤밍, 쿤밍에서 리장으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게 일반적이지만, 최근에는 쿤밍까지 가는 직항도 생겼고, 리장의 구시가지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탓에 관광객을 위한 교통 또한 편리한 편이다. 백두산 높이와 맞먹는 고원 지대에 자리잡은 리장은 시내 어느 곳에서도 만년설이 덮인 옥룡설산(玉龍雪山)을 볼 수 있다. 구름 속에서 신비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이 산은 나시족이 신성시하는 산이다. 특히 운남성 저지대의 무더운 기후와는 달리 아침 저녁으로 선선함을 느낄 수 있어 옛 차마고도의 근거지였던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문화유산 리장의 구시가지

세계문화유산 리장의 구시가지

구시가지는 돌을 잘라 도로를 포장했고, 옛 건물들이 지진 등으로 몇 차례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원에 큰 노력을 기울여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작은 개울과 돌다리 등이 옛모습 그대로 보존된 데다 이곳의 모든 식당과 가게가 동바 글자로 간판을 달고 있어 마치 그림 속에 묻혀 지내는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도시다.

시 외곽에 있는 옥천 공원에는 동바 문화를 연구하는 동바 박물관과 동바 문자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박물관에는 동바글과 경전들에 대한 소개및 굿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과 제상 등이 차려져 있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바 의례를 지내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박물관의 연구자들을 통해 동바를 만날 수 있었다. 작가가 만났던 동바는 대대로 동바를 해온 집안의 허쉬에원(和學文) 씨였다. 이들은 10여살부터 동바의 역할을 배우는데, 밤에 화덕 주변에서 어른들로부터 얘기를 듣는다거나, 밭일이나 목축일을 하던 중 쉴 때가 되면 밭이나 들판에서 배우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의례에 참가하여 보고 들으며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학습의 과정이다.

나시족의 문화는 조상에서 후손으로 전승되며 내려온다.

나시족의 문화는 조상에서 후손으로 전승되며 내려온다.

나시족의 일반인들은 동바를 인간과 조상 사이, 그리고 자연에 있는 신과 귀신들 사이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각종 제사활동을 조직하고 그를 주재하는 동바들은 동바의 제례, 즉 굿을 최소 하루, 보통은 6∼7일에 걸쳐 진행한다. 특히 동바는 제장의 배치, 민속과 관계가 있는 모든 것은 물론 규범과 전통, 나시족의 예절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굿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제작, 각 필요한 모형과 신의 집, 신과 귀신의 형상을 만드는 일, 또 그림도 그리며 굿에 사용하는 집기의 제작, 귀신들의 가면(탈), 흙으로 만든 인형들의 제작도 담당한다. 그들이야말로 나시 족의 살아있는 역사인 셈이다.

이런 동바들은 제문과 상형 문자로 쓰인 동바경과 입으로 전해지는 얘기 등을 외우고 있다. 상형문자로 쓰여진 경전은 수만 권에 이르고, 굿의 성질과 순서에 따라서는 10여개에서 수십개의 책이 필요하다고 하니, 외우는 경전의 수가 곧 동바의 실력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렇게 동바가 신성시하는 동바경전에는 제사의 제문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아름다운 고전 신화다. 하늘과 땅이 생겨난 창세 신화, 물건의 유래를 담은 조물신화, 인류의 전쟁 신화 등이 동바경전에 담겨 동바의 고전 문학을 이루는 것이다.

스스로 하늘과 땅 사이에 산다고 생각하는 나시족 사람들, 그들은 인간과 신 사이에 동바를 두고, 동바문으로 기록된 동바 경전을 지키며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