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 특별전 <極 - 끝없는 기억>

제주도립미술관에서 2015년 2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열리는 <極 - 끝없는 기억, 김수남 특별전 >은 작가가 타계하기 전 마지막으로 직접 프린트해서 서명을 남긴 사진 54점 전체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전시다. 김수남은 한국의 무속신앙을 기록하는데 일생을 바쳤던 한국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2006년 태국 치앙라이에서 촬영 도중 타계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문화인류학 기록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순수 예술적인 가치도 높이 인정받는 그의 대표작들로 구성돼 있다.

김수남은 1980년대 새마을운동의 광풍(狂風)에 밀려 '버려야 할 미신'으로 천대받던 한국의 굿을 사진이라는 기록 예술의 힘을 빌어 새롭게 조명한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구자다. 그는 무속 신앙이 다른 종교나 철학과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정신적 근원을 담고 있는 정신문화의 한 정수라 생각하고 그 본질을 렌즈 속에 담아왔다. 또한 김수남은 한 때 주술사로 치부되던 무당을 진정한 '예인(藝人)'으로  평가받도록 자리매김시킨 공로자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그가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신의 음성을 빌어 사람들을 교육하며, 춤과 소리 및 다양한 공감각을 이용해 예술을 표현하는 무당의 모습을 그들 옆에 가까이 다가가 본질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같은 그의 문화인류학적인 시각은 한국은 물론 일본과 독일 등 해외에서도 호평받았으며 다양한 한국의 무형문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시선을 아시아로 돌려 한국과 마찬가지로 산업화에 따른 개발의 광풍 속에 사라져 가는 아시아 소수 민족들의 삶과 무속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비록 작가는 한창 일할 나이에 미완(未完)의 작업을 남긴 채 아쉽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한국을 넘어 아시아, 나아가 세계 인류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유작전 작품은 물론 '아시아의 하늘과 땅', '빛과 소리의 아시아' 등 기존 전시에서 소개됐던 판본들이 함께 전시돼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로 확장됐던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다시 한 번 조망할 수 있게 도와준다. 특히 약 20년 전 촬영된 아시아 소수민족들의 삶과 풍속은 이 짧은 기간 동안 아시아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어 왔으며, 동시에 크고 중요한 가치를 잃어 왔는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아시아의 하늘과 땅

김수남은 한국의 무속을 출발점으로 밖으로는 일본을 비롯한 중국, 대만, 타이, 인도네시아, 베트남, 스리랑카, 버마, 네팔, 인도, 필리핀, 러시아로 시야를 넓혀 나갔다. 20여년 간에 걸쳐 한국의 굿 작업을 기록한 김수남은 아시아를 새로운 필드로 선택해서 일관되게 샤머니즘을 추구한다. 보이지 않는 신과 인간들의 교감을 구현한 김수남의 사진 작업은 한국의 샤머니즘을 중심에 놓고, 그와 아시아 각지의 샤머니즘의 공통성과 차이성을 찾아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 시점과는 반대로,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가슴 깊숙한 곳의 풍경을 하나의 통로로 해서 아시아 각지의 민간신앙의 다채로움과 생활문화의 독자성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제주도립미술관)


굿, 영혼을 부르는 소리

1970년대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시작된 농촌 주택 개량사업은 전통적인 초가집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어 놓았다.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 풍광이 변해 갔고, 많은 사진가들은 변모하는 농촌을 찍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김수남은 굿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인위적으로 소멸시키는 하나의 문화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굿 속에는 서민들의 고통과 슬픔, 맺힌 원(怨)과 한(恨)을 달래주는 기능이 있었다. 김수남은 사반세기를 한국의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샤머니즘의 의식을 사진에 담았다. 관찰력과 지식과 사진의 역량을 지닌 그는 '한국 샤머니즘의 문화사'를 창출해냈다. (제주도립미술관)


제주의 사계

제주는 김수남의 고향이자 원형이었다. 첫 해외 작업의 시발이 되었던 일본의 오키나와부터 타이완과 필리핀,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김수남이 제주를 통해 바라본 아시아의 섬들은 모두 하나의 거대한 아시아 해상 문화권의 일부였다. 육지에서는 섬이 바다로 인해 고립된 지역이라 생각했지만 섬 사람들은 오히려 훨씬 더 넓은 세상과 일찌감치 소통하며 열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김수남은 제주를 떠나 제주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김수남이 바라본 제주는 일만팔천 신들의 고향인 동시에 아시아를 향해, 나아가 세계를 향해 앞바다를 열어 놓은 드넓은 섬이었다.


아시아의 참 모습을 담은 사진가

"사진은 사건을 종결된 것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중략)... 초상사진은 기념비 즉 슬픔을 종결 짓는 수단으로서의 대용물을 나타낸다. 김수남의 전체 사진 작업에는 이러한 기억의 차원은 결여되어 있다. 당연히 수망굿 사진에서도 그렇다. 김수남이 찍은 영상들은 샤머니즘의 제례적 형상들이 사라진 데 대해 우리를 위로하는 것으로 넘길 수 없다. 그의 사진들은 한국 샤머니즘의 종말을 문화사에서 극복한 단계로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놀랍게도 어떤 무한성을 지니고 있다." (요헨 힐트먼, 독일 함부르크미술대학)

힐트먼 교수가 바라본 김수남은 일반적인 사진을 찍는 작가와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순간 시간은 평면 속에 갇혀 종말을 맞게 되는데, 김수남의 사진은 오히려 현실에서 종말을 맞은 것들을 사진 속으로 옮겨 되살리고 있었다. 즉 김수남이 만들어 낸 사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한 번 기록된 기억은 기록과 함께 끝나는 대신 끝없이 기억되는 極이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카메라를 든 무당이라고 불렀는지 모른다. 죽음이 종말이 아니고 다른 삶, 다른 만남을 위한 준비에 그칠 뿐이라고 우리에게 일깨워줬던 무당들처럼, 그 또한 사라지는 것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살아나는 것이라고 사진으로 말하고 있다.